국선도

국선도와 21세기 리더쉽..!!

Jeonghwan Choi Sabum (2006) 2009. 3. 16. 06:07


<사진: 저, 임경택 법사님, 그리고 임법사님 저술하신 '숨쉬는 이야기'>

제 사부님이신, 목포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님이시자, 국선도 법사님이신 임경택 법사님의 강연 중에 21세기형 지도자 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가장 한국적이자 세계적인 진정한 새로운 리더쉽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아시게 될 겁니다...제 사부님이라서가 아니고, 나름대로 제가 리더쉽이나 인사관리 기업가정신 등등 MBA과목들 모두 유명하신 분들에게 들어봤고, 또 혼자서 이런 저런 논문이며 Article이며 모두 찾아보곤 했지만, 여기 실은 글 만큼 정확하고, 진정한 리더쉽을 설명해 놓은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괜한 쓸모없는 허명을 쌓겠다고, 멀리 독일까지 와서 "참공부"는 뒷전인채 "헛공부" 한답시고, 몸상하고 마음상하고 해서, 사부님 뵙기 참으로 면목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못난 돌도 혹여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제가 무쟈게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나신 후에는 제가 왜그리도 사부님 쫓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

J.H.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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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우리가 만들어야 할 21 세기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21세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없이 보다 대국적인 사고는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가 전제된 이후에 그 연장선상에서 미래에 전망과 대응 방안이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역사의 보편화 과정에 대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의 보편화 과정은 정신의 보편화 과정과 물질의 보편화 과정을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 보편화 과정은 세계적으로 교육을 받는 대상층의 확대와 교육기간의 연장등을 들어 설명할 수 있는데, 한가지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수천년 역사과정 중에 금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전인류가 보통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양적 확대를 이루어 왔으나 교육의 질적인 문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육의 보편화는 인류 문명 구조의 변화를 더욱 가속시키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물질의 보편화 과정은 의식주의 기본적인 해결과 생활수준 향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연원리를 이용한 기술의 향상에 크게 기인하고 더욱 발전할 것이지만 부의 지나친 편중과 이로 인한 기아의 문제를 아직도 남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변화의 양상과 문제는 무엇인가?

이는 한국의 발전이 기본적으로 모방에 의존해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합니다. 국가는 외국의 것을, 개인은 서둘러 남의 것을 조금 변형시켜 모방하면 성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는 그러한 모방만을 통한 발전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발전이 그 한계점에 이른 것입니다. 모방할 대상이 이제는 거의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지혜가, 개인에게는 창의력이, 사회적으로는 신뢰의 회복, 곧 信義가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가 이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도덕성 회복이라는 명제에 대해 이런 저런 구호만을 통해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도덕적인 사회, 신의와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를 이루는 것과 개인 자기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연관이 되어지는가에 대한 명확한 논리를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창의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명확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의력이라는 것, 지혜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생겨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그 방법을 터득하는 데에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에게는 지도자의 상이 시대가 달라지면서 현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분명한 상의 제시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지도자상은 시대상으로 보면 1차 농업사회에서 영웅적 인물, 다시 말해서 집단의 맨 앞에 서서 집단을 이끈 영웅적 인물의 상이었고, 2차 산업사회에서는 집단의 중심에 서서 구심점으로 작용하여 민의를 수렴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 태동의 기운이 보이는 정보화 시대의 지도자상은 무엇인가. 집단의 맨 뒤에서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아실현 곧 전문가적인 소양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원을 잘 보조해줄 수 있는 상, 그런 지도자상이 필요합니다. 이때의 지원과 보조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고 거기에 더해 집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과거의 사회 체제가 감시와 규제 타율적인 명령 체계에 기인해 왔다면 이제는 자율적인 협조체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역할과 책임이 주어지면 감시가 없어도 비교적 성실히 수행합니다. 이는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구성원이 개성화되고 전문성과 자격증을 지니게 된 것이며 그 성원의 성격과 질이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전의 사회, 곧 기업이나 국가가 분명한 피리미드 구조였다면 지금은 팀장 제도로 바뀌고 있는 추세인데 바로 이러한 것이 시대의 변화를 논증하는 예일 것이고 앞으로 점점 확산의 추세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의 질적인 변화의 차원에서 거기에 맞추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지혜는 어떻게 키우며 구성원 개인의 창의력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공동체 사회에서의 도덕성과 신의와 신뢰는 어떻게 보고 함양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당면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지혜와 창의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선택의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혜는 생각에 막힘이 없고 굴절이 없고 단절이 없고 헝클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사고)은 '얼'의 작용입니다. 이 '얼'의 뿌리는 하늘이요 '넋'의 뿌리는 땅입니다. '얼'을 한자로는 靈魂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결부됨으로써 살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죽는 것입니다. 혼비백산합니다.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져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영혼의 뿌리는 하늘이며 하늘에 대한 외경심이 없으면 다시 말해 자신의 신세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고 해서 하늘을 원망하면 혼줄이 끊어집니다. 그것은 영적인 고아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영적인 고아가 되면 영혼이 맑을 수가 없고 따라서 순수해질 수가 없고 올바른 사고의 조리가 없어지고 헝클어지게 됩니다. 적게는 부모를, 친구를, 동기간을 원망한다거나, 자기 스스로 어려움에 처하면 자기 탓을 하는게 아니라 다른 대상을 원망하며 또한 악한 마음이나 생각을 하거나 흑심을 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혜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天에 대한 외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고의 단절을 국선도 수련인의 입장에서 말을 할 때 호흡 일분대를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호흡이 40∼50초는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의 근기가 아니고서는 일분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이유는 자기의 원초적인 본능, 이기심, 생명에 대한 집착, 이런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벗어나려면 우리가 수련할 때 청산선사께서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늘을 본받으려는 大孝之心을 갖고 자기를 버리는 입장에 서야만 합니다. 그런 입장에 가지 않으면 절대 일분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우선 上氣가 되고 호흡에 압박이 와서 몸을 가누질 못합니다. 일분벽을 넘게 되면 사고의 갈등이 없어지고 사고의 조리가 생겨납니다. 또한 감정의 갈등도 없어집니다. 사고와 감정의 갈등이 없어지고 어떤일을 대할 때 그 일의 맥점이 보이게 됩니다. 더 집중해서 보면 여러 맥점들이 보이는데 그 맥점들의 순서가 배열해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창의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의 맥점이 보이면서 막힘이 없이 틔여 보이는 것이입니다. 결국 창의력은 지혜가 각각의 소질에 따라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호흡이 일분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호흡을 무리하게 늘리려 하거나 호흡의 길이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주의가 요구되므로 지도자에게 충분한 상의와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공동체 사회가 전체에 핵심으로 작용, 함양해야 할 도덕성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자연현상에서 생명의 3대 요소는 적당한 온도와 수분과 영양분을 듭니다. 자연의 생명현상을 인간에 비교해 보면 적당한 온도는 따뜻한 마음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타인 이전에 자신에 대해서 얼마만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위로한 적이 있는가. 못난 자신, 못생긴 자신, 회의, 갈등, 번뇌, 소외감, 열등감, 초조, 불안, 의심, 자조, 냉소, 자학 등 모든 것은 차가운 성질은 갖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응축시켜 스스로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주지 않으며, 부모에게나 형제, 친구, 연인 등 타인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받기 원하는 것은 생명력의 구걸행각이요, 인생의 거지행각인 것입니다. 그런 이에게는 평안함과 행복감이 오지 않습니다. 설령 오더라도 일시적입니다. 타인에게서 받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웅덩이나 연못은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물의 공급이 없으면 언젠가 메말라 버리는 반면, 옹달샘은 늘 스스로 가득 채우고 오히려 넘쳐서 주위를 적셔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하고 넘쳐서 타인에게까지 끼치는 것을 '德'이라 합니다. 자신에 대해 따뜻하게 감싸지 않고 위로해 주지 않는 자가 어찌 타인에게까지 따뜻함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 현상의 수분은 인간에 있어서 여유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너무 조급하고 성급하며 때로는 감정적입니다. 차분함도 없이 쫓기는 듯합니다. 언어구사도 극단적이고 딱부러지게 합니다. 또한 곧잘 우쭐대고 남은 쉽게 무시합니다. 이는 스스로 마음을 건조케 하여 메마르게 하는 현상을 초래합니다. 마치 알곡이 수분이 부족하여 쭉정이가 되어버리는 현상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 현상의 영양분은 인간에 있어서 보람입니다. 사람이 일에 성실하고 스스로 가치있는 일을 했을 때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개인에게나 사회에 밑거름이 되며 영양분을 축적하는 것과 같고 삶에 윤기가 있게 합니다. 보람이 없는 행복감은 진정한 행복이 아닌 모래성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도덕성의 회복없이는 기존의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질서가 서지 않고 사회에 살맛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지 않으며, 국민의 융화력과 친화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국민의 융화력과 친화력이 없이는 국민의 응집력에 한계가 있고 따라서 국력의 신장에도 한계가 있게 됩니다.

도덕성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것은 사회전체의 기운이 따뜻함을 간직하고 온화한 모습을 보이며 여유롭고 보람을 가져 재생산의 거름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 작용은 국선도 수련을 통해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선도가 한국사회에 새로운 수양의 풍토를 조성하고 도덕성 회복에 구체적으로 기여해야 할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