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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풍류도 (국선도, 화랑도)와 茶道 정신..!!



 

풍류도는 많은 사람들이 국사책에서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을 통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만, 정작 그 실체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仙史에 자세히 기록되었다는 것만 글에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그 仙史라는 것이 잘 전해지지 못하다보니 아쉽게도 그리 되었겠지요.

 

다행히 국선도에서는 대대로 스승에서 제자로 口傳되어진 道話 라는 것이 있어 仙史의 큰 맥을 이어오는 방편으로 전해지다가, 이것이 청산선사에 의해 공개되어 仙史의 한 맥의 내용을 알 수 있게되어 풍류도의 편린이나마 알 수 있게된 듯 합니다. 

 

우리 민족 사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밝받는 법" 수련은 9,700년 전에 백두산 하늘함 도인으로 시작된 것으로, 이것이 대대로 계승되어 후일 신라에 전해져서 풍류도와 화랑도, 국선도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고구려의 조의선인, 경당, 그리고 백제의 싸울아비, 후일 조선에서는 조식잠 등의 여러 다른 이름으로 전해졌을 뿐 그 뿌리는 모두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중 풍류도 (화랑도, 국선도)에 대해서는 우리 국선도 책자 "삶의 길 - 밝받는 법"에 그 연원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김풍기 도인의 도화 끝부분에 보면 모든 단계의 수련을 마친후 김풍기 도인이 뒷 날에 바람을 타고 다니는 경지에까지 이른 풍치있고 멋진 도인이라 하여 그분의 이름 중 風을 따서 그분께 가르침을 받았던 집단을 일컬어 風流道라 하였다는 겁니다.

 

다시말해 지금의 韓流와 같이 "밝받는 법" 중에 어떤 특정한 유행을 일컬어 風流라 했던 것이지요. 자세한 것은 국선도 "삶의 길"이라는 책을 보시면 되겠습니다만, 김풍기 도인 도화 중에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것을 일부 발췌하여 이곳 말미에 적어놓았으니 풍류도의 참된 정신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연원도 알고, 정신도 알았으니, 풍류도 (국선도, 화랑도)의 수련의 한 방법인 茶道에 대한 것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차와 관련된 참조될 말 도 전합니다. 차 문화도 이미 오래전 부터 한민족 고유의 修道法의 하나로 함께 녹아져 들어있었음을 아시고, 자신있게 茶를 즐기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정환 白

 


 

화랑 정신과 다도정신

 

 

한국다도정신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먼저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중국의 다도정신을 고찰하는 방식처럼 중국의 유명한 다서를 중심하여 다서 중에 표현된 정신-- 음유적 표현 또는 직설적 표현 등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방법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다도정신을 구명할 만한 다서가 초의선사의 다서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한국의 시대별 다도정신의 구명은 다인들의 茶詩 또는 다생활을 중심으로 고찰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한국다도정신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정상구의 『한국다문화학』에서는 한국의 다도정신은 이미 신라시대에서부터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다도정신의 기원은 화랑도에서 엿볼 수 있으며 한국다도정신의 뿌리는 원효의 화쟁지화(和諍之和)정신과 그의 적지적(寂之寂)정신 즉 靜정신에서 일어 났다고 논의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다도정신은 원효성사의 화정(和靜)정신을 기조로 하여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의 다시, 정몽주(鄭夢周)의 다시를 비롯하여 조선조시대의 서산대사의 다시 그리고 초의선사의 다시 및 다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 다고 하겠다.

 

<신라시대의 다도정신 -- 화(和). 정(靜). 청(淸)>

신라의 화랑들과 다도와는 깊은 관계가 있다. 삼국유사의 충담(忠談)과 차관계에 관한 것에서 이미 충담은 미륵세존에게 차 공양을 올리고 남산의 오솔길을 내려 오면서 지난날 화랑 기파랑(耆婆郞)의 인격을 기리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헤치고 나타난 달이
흰구름 쫓아 떠가는 어디에
새파란 냇물속에 기랑의 모습 잠겼세라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이
랑의 지나신 마음갓(際)을 쫓고자
아 잦(栢)가지 높아
서리 모를 화판(花判)이여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차는 이미 선덕여왕 시대부터이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 기록된 바에 의하면 흥덕왕 2년에 입당회사인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차씨를 화개동에 심었다 하여 점점 퍼지게 된 것이다. 경덕왕은 충담사를 궁중에까지 맞아서 차를 마신 기록이 있다. 왕은 「차의 기미가 신기하여 입안에 이상한 향기가 가득차다.」(茶之氣味異常 中異香郁烈)고 하였다. 이것만 봐도 왕이 차를 얼마나 좋아 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신라 화랑과 다도와의 관계는 고려 중엽의 문인 이곡의 기행문 동유기(東遊記)에서도 엿볼 수 있고 그의 다시 가운데에도 엿볼 수 있다. 그의 다시 「강릉동헌의 운을 잇다.」(次江陵東軒韻) 또는 「한송정(寒松亭)」등에서 엿볼 수 있다. 뿐아니라 김극기의 화랑 「차부뚜막」을 읊은 시 등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대학자 이규보(李奎報)의 「원효방(元曉房)」을 심방하고 원효와 사복(蛇福)간의 차생활 기록 등에서도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러면 화랑도정신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세속오계를 드나 이는 합당치 않으며 또 어떤 사람은 미덕을 들기도 하나 미덕이란 지나치게 개연적인 것이어서 이를 취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그럼 과연 화랑정신이란 무엇일까 ? 이에 관해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이름하여 풍류라 이른다. 그 교의 기원은 선사에 자세하게 실려 있는데 실로 이는 삼교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집에 들어오면 효도를 다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의 뜻 그대로이며, 그 한없는 일을 당하여 말없는 교를 행하는 것은 주주사의 종지를 다함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행함은 축건태자의 교화 그대로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랑도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했으며, 충효신의를 지켜 유교를 무의무언지교 화광동진(和光同塵) 충기이위화 하는 선교를 또 자비덕행하는 석가의 불도를 다 같이 수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랑의 기상은 유. 불. 선의 장점을 산천에의 주유와 더불어 심신을 단련하여 또 차와 더불어 체득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라시대의 화랑정신은 이를 「화합(和合). 충절(忠節). 숭경(崇敬). 청결(淸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랑의 다정신도 화(和). 충(忠). 경(敬). 청(淸)이라고 하겠다.

 

정영선의 『다도철학』에서는 화랑의 다문화를 논의하면서 6세기 이전의 인물로 추정되는 신라 사선이 경포대와 한송정에서 「석지조(石池爬)」라는 돌못화덕을 사용하여 차를 끓여 마셨다는 기록이 흔히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선은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랑(南郞). 안상(安詳)으로 선인이자 초기 화랑으로 이러한 특수한 다구를 써서 야외의 특정장소에서 차를 끓어 마셨다.

 

맨 처음 사선의 다조를 글로 남긴 사람은 김극기(金克己,1148-1209)로서 그는 <한송정>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아래와 같이 읊고 있다.


여기가 네 신선이 자유로이 완상하던 곳
지금도 남은 자취 참으로 기이하구나
주대는 기울어 푸른 풀 속에 잠겼고
다조는 내버려져 이끼 끼었네


또한 이곡(이곡,1298-1351)이 동해안지방을 여행하고 쓴 『동유기』를 보면 경포대와 한송정에 있는 사선의 전다구(煎茶具)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날이 아직 기울기 전에 경포대에 올랐다. 옛날에는 대에 집이 없었는데 요즈음 호사자가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옛날 선인의 석조가 있으니 대개 차를 달이는 도구이다. 동쪽에 사선비가 있었으니 호종단이 물 속에 넣어 버리고 오직 귀부(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송정에서 송별연을 했다. 이 정자 또한 사선이 유람하던 곳인데, 고을 사람은 구경꾼들이 많은 것을 귀찮게 여겨 집을 헐어 버렸고 소나무도 들불에 타버렸다. 오직 서리내리는 밤의 달이 맑을 뿐이다. 다만 석조 석지와 두 개의 석정(돌우물)이 그 곁에 남아 있는데 역시 사선의 다구이다."

 

위의 글을 살펴 보면 한송정 뿐만 아니라 경포대에도 화랑들이 차를 마셨고, 그 자리에 석조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송정에도 석지와 두 개의 석정이 있음도 적고 있다. 우물이 두 개인 이유는 하나는 제사장용이거나 차끓이는 물을 쓰기 위한 신성한 샘이고, 다른 하나는 낭도들이 쓰거나 허드렛물을 쓰기 위해 파놓은 우물이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서에 남아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신라의 음다풍속을 살펴 볼 때, 주류를 이루는 계층은 화랑이었다고 하겠다. 대표적 인물로는 6세기 이전의 초기 화랑인 사선과 후기의 화랑승인 충담, 월명, 보천과 효명 등이라고 하겠다. 사선이 경포와 한송정에서 차를 끓인 이유는 이곡이 쓴 『동유기』에서의 내용과 여지승람을 참고하면 아마 차를 끓여 누군가에게 바치고 기도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차를 바친 대상은 사선과 선인들이 떠받들었던 삼신혹은 셋을 하나로 본 시조삼신(始祖三神)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용운은 사선랑의 행다법을 재구성하면서 그 의의는 풍류도를 닦은 선인들이 한송정이나 경포대에서 차를 달여 마시며 심신수련을 하는 선가의 다풍을 알 수 있는 독특한 행다법에 있다고 보았다. 선랑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심신수련을 하였는데 그들의 수련장에는 차를 달이는 돌절구와 돌부뚜막, 돌우물과 다구들이 있었다. 항상 차를 달여 마시기 때문에 깨지지 않는 돌로 만든 다구들을 준비해 두고 사용했으며 산수간에 노닐면서 오악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또 낭도들이 차를 나누어 마시기 편리하도록 그 자리에 고정시킨 다구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헌다순서로 차를 마셨다고 보고 있다.

 

1. 한송정에서 석지조를 이용하여 차 끓일 준비를 한다.
2. 석조는 찻물을 끓이며 차 달이는 부뚜막이고, 석지는 찻물을보관하는 기구이다.
3. 석지에 찻물을 길어다 놓고 석조에 불을 피워서 찻물을 끓인다.
4. 석조 옆에 물을 채워서 물이 데워지도록 하고 연료는 숯이나 백탄을 쓰되 솔방울을 주워다 쓰기도 한다.
5. 다구를 깨끗이 씻어서 준비하고 찻물이 끓기를 기다려 물이 끓으면 약간의 탕수를 떠내 찻잔을 데운다.

6. 떡차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돌솥에 넣어 끓인다.
7. 차의 양은 손님의 수에 따라 가감을 한다.
8. 찻잔에 물을 버리고 잘 달여진 차를 떠내서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9. 낭도 한명이 찻잔을 받쳐 들고 정자 안에 계시는 사선에게 차를 날라다 드린다.
10. 사선에게 차 대접을 마치고 나면 다른 낭도들이 마실 차를 달인다.
11. 전과 같은 순서로 차를 달여 낭도들에게 차례로 나누어 준다.
12. 낭도들은 자기의 찻잔은 각자가 휴대하며 차 마실 때 꺼내어 차를 받아서 마신다.
13. 사선은 정자 안에서 마시고 낭도들은 밖에서 아무 곳이나 편리한 속에서 차를 마신다.
14. 사선이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찻잔을 거두어 가지고 나와 석조의 데워진 물에 씻어서 보관한다.
15. 석조에 설거지하는 통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Source: 사이버 전통 다도 박물관

( http://dadokorea.pwc.ac.kr/main-b/main-b-right.htm )

 


김풍기 도인의 우주에 관한 자문자답 中

 

우주의 완성 - 하늘 땅 사람의 등장

 

하늘이 첫 번째로 생기고 두 번째로 땅이 생겨났으며 세 번째로 뭍 생명과 사람이 생겨난 것임을 천부경(天符經)에서 천부경(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으로 표현하고 이 또한 김풍기 도인의 도화에서 확인했다. 이렇게 생겨난 사람은 드디어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를 알아 가는 지혜를 갖추게되어 하늘 땅의 운행도수를 알게 되었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설명하는 김풍기 도인의 도화를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

                                                                                   

“... 하늘의 덩어리는 서로 맞물고 서로 당기며 아무런 사심도 없이 다만 돌기 위하여 돌아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더운 곳이 있으면 찬 것이 와서 어루만져 식혀주고 찬 곳이 있으면 더운 것이 와서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며 달은 땅을 가운데 두고 돌기 위하여 돌고 있으면서 다같이 모든 별과 함께 밝을 돌아가고 있으니 달이 땅을 가운데 두고 돌고 있는 동안 밝을 달이 가렸다가는 지나치고 지나쳤다가는 또 가리고 땅은 또한 스스로 돌기 위하여 혼자 스스로 돌아가니 땅이 스스로 돌아가는 동안에 밝이 오고 밝이 뜨거운 빛을 내뿜고 밝이 서서히 가고 밝이 가서 어두움이 오는 것이 한결같으니 밝이 오는 때를 새밝(새로 밝이 온다는 뜻)이라 하고 밝이 나와 뜨거운 빛을 내뿜고 낯(빛이 나왔다는 뜻)이라 하고 빛이 서서히 가면 저녁(저쪽 녁으로 간다는 뜻)이라 하고 어두움이 오면 밤(밝이 엄다)이라 하고 이렇게 같은 것을 알아내게 되어 늘 같으므로 그것을 날(늘 같다는 뜻)이라하고 달이 생겼다 없어지고 없어졌다 생기고 하면서 땅을 돌아가니 그 수를 헤아려 보아 삼십 날입니다.

 

이를 하나의 달이라고 하고 땅은 땅대로 돌고 달은 달대로 돌면서 땅을 돌아가고 땅과 달이 이와같이 하여 돌아가기 위하여 돌아가면서 밝을 가운데 두고 밝도 가까이 또는 멀리 한바퀴 땅 달 밝이 다같이 돌며 돌고 있으니 그 수를 날로 헤아려 보니 삼백육십다섯 날입니다. 그러므로 밝을 한바퀴 회돌았다는 뜻으로 회 해라하기도 하고 땅의 양쪽 끝은 항상 밝을 덜받아 춥고 가운데는 밝을 너무 받아서 뜨겁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알맞은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365날의 한 해를 30날이 달로 나누어 보니 12달하고 5날이 남는지라 5날로는 하나의 달을 만들 수 없으므로 여섯해를 모아서 하나의 달을 만드니 이를 윤달이라 하고 하나의 해를 넘기는 동안에 밝과 가까이 돌고 있을 때는 따뜻하고 멀리 돌고 있을 때는 차츰 추워지니 이를 잘 살피어 처음 살아갈 때에는 사냥이나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살아 왔으나 차츰 머리가 트임에 따라서 네 절기의 바뀌어짐을 잘 알아서 밝과 가까워지며 돌 때를 밝을 가까이 뵘는 다는 존어의 뜻으로 봄이라하고 아주 밝과 가까이 돌고 있으면 밝을 받아 모든 것의 가지가 열리고 늠름하게 자란다는 고마움의 뜻으로 여름(여러가지 열음)이라 하고, 밝과 점점 멀리서 돌게 되어 가면 을씬스러워 진다는 뜻으로, 밝의 따뜻함을 멀리서 받게 된다는 아쉬운 생각에서 가을이라 하고 밝과 아주 멀리 돌고 있으면 겨우 빛을 받게 된다는 우리 사람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겨우 우리에게 뜻으로 밝을 겨로서 아쉬움을 표현한 뜻으로 겨울이라 하였고 365날을 네마디로 나누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정하여 그 이름을 붙여 부르며 그 변화의 바뀜을 알아내어 따뜻한 봄이 되어 봄비가 따뜻하여 온 땅에 쌓였던 얼음이 녹아 내리고 먼 산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모든 풀과 나무, 아니 더 작은 물건까지도 또한 들짐승 날짐승 물고기 등 모두가 기쁨에 넘치며 노래하고 춤추며 또 이어나가려 서로 합하니 ...”

 

이상과 같이 역학(易學)이 생겨나는 과정을 언어를 풀어 밝힌 김풍기 도인전은 고대 우리조상들의 태양숭배사상이 그대로 녹아있다. 태양을 기준으로 모든 낱말이 생겨났으며 이러하 언어의 고찰에서 또한 수도의 세계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어렵게만 생각하는 역학의 세계가 이와 같이 소박한 밝의 관찰로부터 나온것이니 우리 국선도의 체계가 비록 많고 복잡한 것 같아도 광명사상의 원리와 기이론으로 살펴보면 쉽게 그 참뜻을 알아갈 수가 있다. 우리민족의 광명사상은 이러한 태양숭배사상에서 기인한다.

 

출처: 국선도 - 삶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