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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진정으로 살려면, 놓으라...!!

진정으로 살려면, 놓으라...!!


옛날에 어느 마을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비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라 앞을 보지 못하며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언제나 자신에게 익숙한 길로만 지팡이를 짚으며 조심스레 다녔습니다. 가끔씩 산길을 따라 고개 너머에 있는 이웃 마을에도 가곤 했는데, 그때에는 어느 때보다도 주의를 기울여 실족(失足)하거나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애를 썼습니다.

그날도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산길을 따라 이웃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벌써 몇 번을 왔다 간 길이라 그의 예민한 감각에 이미 익숙해 있었고, 그래서 지팡이가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였기에 그는 어느새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방심한 탓일까요, 콧노래가 이윽고 산천을 울리는 걸쭉한 노래로 바뀌어 있을 즈음 그는 문득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차 싶어 정신을 차리고 지팡이와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모으고 주위를 더듬어 보니, 아뿔싸! 이미 한참을 길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큰 산짐승도 나와 사람을 해친다는 얘기도 들어왔던 터라 그의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는 도포자락과 갓을 낚아채는 산가지들을 손과 지팡이로 후려치기도 하고 걷어내기도 하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런데 너무 황급히 달렸던 것일까요, 그는 어느 한 순간 그만 실족하면서 경사가 몹시 급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소경이라 앞을 볼 수 없었기에 더욱 미친듯이 손을 뻗으며 무엇이든 잡으려고 애를 썼고, 한참을 그렇게 데굴데굴 미끄러져 굴러내려가던 그는 마침내 두 손아귀에 단단히 들어오는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힘있게 잡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은 허공에 둥둥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아,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나뭇가지라도 잡지 않았다면 그는 그만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져 죽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산천이 떠나가도록 외쳤습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뿐이었습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지쳐갔고, 그의 손에서는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아, 죽음이 조금씩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멀리서 사람이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비명과도 같은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디 있소! 누구시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그 소리를 듣자 날 때부터 소경인 그 선비는 마지막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여기요! 여기 있소! 살려주시오~~~!!"

마침내 소리나는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온 그 사람은 그러나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만 우뚝 서버렸습니다. 살려달라고 그렇게나 다급하게 소리지르던 그 선비는 고작 1미터 남짓한 높이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 어이가 없다는 듯 가만히 선 채 다만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그 선비는 앞을 볼 수 없었기에 자신이 처한 그 우스꽝스런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이긴 했지만, 사람의 기척을 느낀 그 선비는 더욱 애틋하고 간절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살려주시오! 여보시오, 거기 사람이 있거든 날 좀 살려주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말합니다."살고 싶으면 그 손을 놓으시오. 그 손을 놓으면 당신은 살 수 있소." 그러나 한참을 굴러떨어지다가 필사적으로 나뭇가지를 잡게 된 그 선비는 자신은 아득한 낭떠러지 위에 겨우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감히 손을 놓지 못하고 이렇게 외칩니다. "아니, 무슨 소리요! 이 손을 놓으면 나는 죽을는지도 모르오. 아니면 미쳐버리든지....그러니 어떻게 이 손을 놓겠소! 그러지 말고 제발 날 좀 살려주시오!"

"아니, 당신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오히려 그렇기는커녕 당신은 진정으로 살 것이오. 그러니, 잡고 있는 그 손을 이젠 놓으시오."그러나 그는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이렇게 외칩니다.
"아, 어떻게 이 손을 놓는단 말이오! 나는 지금 너무 무섭고 겁이 나오...!" 그러자 그 나그네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남아 있구료. 그 힘이 다 빠지면 스스로 알게 되리이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소.""이보시오! 그냥 가면 어떡하오! 제발 날 좀 살려주시오~~~!!"

그러나 그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산천을 떠돌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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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중국의 장사 경잠(景岑) 선사가 한 말로 “높이가 백 척인 대나무 끝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진여(眞如)라고 하지 않겠다. 백 척의 대나무 끝에서 걸어 나아가야 시방세계(十方世界)가 비로소 자기 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백척간두 진일보’를 글자 그대로 새기면 백 척이나 되는 대나무 끝에서 한 걸음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백 척의 높은 대나무 밑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때문에 감히 대나무를 놓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일보 하라는 것은 죽으란 소리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과감히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아야 진정한 깨달음이 있다고했습니다. 즉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울 때는 백척간두에서도 진일보하겠다는 마음가짐이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