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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국선도의 철학


국선도의 철학적 성격을 애기 할 때 卽觀的 哲學觀 이라 합니다.

이에 卽觀哲學에 대한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국선도 1983년판 제 3권 제 2장 국선도의 철학적 성격 pp. 39~40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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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觀이란 ?

卽觀이란 直感이니 直覺이니 靈感이니 하는 말과 다르다. 본래 직관이란 논리를 계기로 하지 않은 직접적 판단이요 추리라고 하고 있으나 卽觀은 그보다도 주관과 객관을 대립시켜 그 대상을 판단하는 사고 방식이 아니라 주관에 아무 작용이나 추리가 없이 그리고 그 대상을 어떤 상징적으로 어떤 내용적으로 그 속을 들여다 보려는 態없이 그 사물을 그 사물 그대로 직접 보는 관찰인 것이다. 그 모습 그 상(象;相)을 그대로 보는 觀象의 觀이 卽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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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1993년판 제 3권 제 2장 국선도의 철학적 성격 pp. 34~37 중)

과거의 철학 특히 우주의 실체를 말하는 형이상학은 고대 철학이나 중세 철학이나를 막론하고 틀림없이 직관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추리요, 상정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칸트의 생각대로 인간의 지능으로는 정립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 말을 필자(청산선사)도 시인한다. 그러나 易學만은 직관적 사고 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아니한다. 직관이라고 한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겠으나 직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한 번 독자도 참작해야 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면 직관적 사고방식이 아니면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卽觀적 사고방식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거의 비슷한 개념같이 보이나 같지않다. 직관은 사물을 해득할 때 논리적 합리적 과정을 거치어 판단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형태의 추리를 거쳐 상정한 사고다. 그러나 卽觀이란 직접 눈으로 관찰하고 지각한 그대로 판단하는 소박한 태도의 사고방식이다. 철학이라는 말보다 오히려 상식이며 현상의 내면보다 현상 그대로의 관찰인 것이다. 易理에서 말하는 음양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추리나 논리를 개재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판단한다. 卽觀은 관찰하되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하는 추리와 상상이 들어가나 卽觀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의 현상의 관찰을 가지고 그 모습 그대로 정리하였을 뿐이다.

상하니 좌우니 양지니 음지니 동이니 서니 여름이니 가을이니한다. 우주적 원리를 따지는데 있어 이러한 개념과 구분이 어찌 해당할 수가 있겠는다. 상공에 올라가면 어디에 상하가 있으며 동서가 있으며 여름,겨울이 있으며 음지,양지가 있겠는가. 그러나 지상에서 인간적 입장에서 보이는대로 보면 틀림없이 그런 현상을 卽感한다. 이와 같은 것을 정리하여 보면 모든 물체나 모든 움직임이 다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만물만상을 상대적으로 본것을 으름해서 음양이라 한 것일 따름이다. 그리고 하나의 생명체가 자라나는 대상을 보도라도 木性과 같이 발아하고, 火性과 같이 생장하고, 水性과 같이 잠입하고, 金性과 같이 결실하고, 土性과 같이 모든 생성의 토태가 된다 해서 오행적 운행이 무슨 추리며 무슨 논리인가. 그저 보이는 대로의 관찰을 구별했을 뿐이다.

이러한 해설을 다 이 책자에 나열할 수 없으므로 다만 易理는 즉관적 관찰방법이라는 명제만을 제시하며 따라서 종래의 모든 직관적 방법이 부정되었다 하나 즉관적인 역리는 도매금으로 부정될 성격의 사상이 아니라 하는 것만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역리에 있어서는 쓸데없이 깊이 들어가 일원론이니 이원론이니 할 필요도 없고 또한 唯心이니 唯物이니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더욱이 역리를 근거로 한 丹理에 있어 더욱 그러하다.

단리는 역리를 인체 생명에 적응시킨 양생지도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체를 한 생명체로 볼 뿐 그 작용을 분석하여 肉이니 心이니 대상으로는 보나 하나의 생명체의 현상으로 볼 뿐이다. 우주의 생체와 인간의 생체와의 관계를 논하고 대우주와 소우주인 인간과의 간계는 특이한 점이 있으므로 그 원리를 이용한 것이 다름 아닌 단리인 것이다. 다시 거듭 말하거니와 단리에 있어서는 이원적인 입장에서 택일하거나 또는 무리한 종합적인 사고 방식을 취하지 아니한다. 본래 근본적으로 일원론이란 성립되지 아니한다.

유물론이란 개체주의적인 택일주의요 따라서 유심론이란 전체주의적인 택일주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원론이란 두 가지 사고방식을 이론없이 그대로 시인하는 태도로서 전자를 택일적 사고방식이라하면 후자는 전일적 사고방식이라 한 것 뿐이다. 그런 중에도 이 대립관을 하나의 변증법적 방법으로 지양코저함이 헤겔의 사고방식이었으나 그도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을 택일이나 변증이나 또는 기계적 합치를 시도하지 않고 그대로 보고 그대로 구분하고 그대로의 작용을 시인하는 태도를 一如的 사고방법이라고 해도 좋다. 이것이 다름아닌 역리요 단리인 것이다. 음양은 대립 같으나 대립이 아니고 대립 아닌 것 같으나 대립인 현상을 一如的 현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여적 사고 방식에 의한 卽觀철학인 역리와 단리가 어떻게 국선도 수련과 관계되는 가를 앞으로 해설해 보겠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