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선도

氣란 무엇인가? - 임경택법사님





Photo: 임경택 목포대 정치학과 교수, 국선도 법사

 

1. 氣란 무엇인가? 

 

수련은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평범한 것입니다. 3∼6개월 집중적으로 수련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신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 나름으로는 1년쯤 수련하고 나니까 몸에 확실히 좋은 운동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3년을 수련하니까 氣가 느껴지고 유통됨을 체득하게 되었으며, 10년이 넘으니까 道의 원리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접하는 무협지등에 등장하는 무수한 도인들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며 그 원리의 핵심이 피부호흡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깊은 차원의 수련으로 진행되다 보면 일반인이 공감하기 어려운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마음이 우주와 하나가 되어 大自然의 자식(子)이라는 일체감이 형성됩니다. 이것이 物我一體요 主客一體라는 말의 근본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점차 피부호흡의 정도가 많아져 내 몸 안의 眞氣와 宇宙 大自然의 眞氣가 상통해가는 과정입니다. 몸은 망사같은 홑옷을 걸친 것과 같고 마음이 비단결처럼 곱고 부드러우며 자기 자신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게 됩니다. 대자연에 감사하고 고맙고, 또한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누가 보건말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이 나게 됩니다.

 

2. 우리 전통사상은 수련문화에 기인한다.

 

그러면서 "이 수련이야말로 우리 傳統的인 것이구나! 그리고 우리 전통사상의 핵심은 바로 修鍊文化에 있구나!"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모든 사상의 뿌리는 언어를 통해 전달됩니다. 호흡을 하면서 우리의 언어가 생동감 있고 싱그럽게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면 '한이 맺혔다'•'마음이 들떴다'•'마음이 흩어졌다'•'마음을 늦춰라' 등의 말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모습이 없는 마음에 대한 이런 다양한 표현들이 어떻게 나왔겠습니까? 수련문화 속에서 나온 여러 표현들 중 하나입니다.

 

호흡을 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상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이를 바탕으로 닦고 기르는(修養) 것입니다. 이 증상에 대한 처방이 '마음을 놓으시오'•'마음을 늦추시오'•'마음을 벗어내리시오'와 같은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다 호흡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 민족이 수련을 했었다는 증거로 원주 치악산의 '九龍寺'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홉 마리 용(九龍)이란 아홉 명의 修道者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외래 세력인 佛敎가 들어와 토착세력인 아홉의 큰 수도자를 몰아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절이 바로 '구룡사'입니다. 이와 같이 명상과 수련은 우리 민족의 뿌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3. 호흡의 방법

 

첫째로 수련에 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公利를 추구하는 마음과 私利를 추구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게 되고 자신과 대자연의 기운을 차단시키고 자신의 몸에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보통 세가지로 나타나는데, 들뜨고 가라앉음, 트임과 흩어짐, 한 곳에 모임(집중)과 맺힘(한맺힘)이 그것입니다.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흩어진 의식을 한 곳(丹田)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집중도가 증가함에 따라서 마음이 트이는 작용이 일어납니다. 즉 물리현상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상관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당기는 힘이 너무 강하거나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힘이 너무 강하면, 제대로 돌지 못하거나 터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우리 몸에서도 일어납니다. 마음에 한이 맺히고 이 맺힌 마음이 들뜨거나 흩어짐에 따라서 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국선도 단전호흡은 이 마음의 수양을 통해 大人이 되는 길입니다. 대인이란 몸집이 큰 사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성숙되고,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힘을 갖춘 사람입니다. 수련을 하다 보면 자신의 몸이 엄청나게 커진 느낌이 들어 놀라서 눈을 떠 보면 평상시와 같은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수가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육체적 정신적 수행을 통해서 몸과 마음을 닦아 나가는 것이 바로 대인이 되는 길입니다. 따라서 우주 대자연을 본받으려는 마음, 대효지심을 갖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호흡을 해야 합니다.

 

둘째로 자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련 중이나 일상 생활을 할 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자세가 있습니다.

 

① 머리는 항상 떠받치는 듯이 조심스럽게 두어야 합니다. 너무 숙인다든지 뒤로 젖혀서는 안됩니다. 늘 시선을 정면에 두고 머리 윗부분이 하늘을 향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몸을 숙일 때는 고개를 들어 주고 몸을 뒤로 젖힐 때는 턱을 당겨주어 늘 평형상태를 유지시켜야 합니다. 기지개를 켤 때 몸을 따라서머리도 함께 아래 위로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② 몸을 뒤로 젖힐 경우에는 몸의 무게 중심인 뒷엉덩이와 대퇴부가 만나는 지점을 젖혀야 합니다. 허리를 뒤로 젖히다 보면 허리에도 부담이 갈 뿐만 아니라,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③ 그래서 몸 전체의 자세는 약간 앞으로 숙인 듯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몸을 15∼30도 정도 숙인다는 기분으로 앞으로 기울여주면 S 자로 휘어진 허리뼈가 편편하게 펴집니다. 이 때 팔에 긴장을 다 풀고 축 늘어뜨리면 양 손 끝이 발 끝을 가리키는 정도가 되게 됩니다. 그러면 허리에도 부담이 없고 몸에 긴장이 풀려 아주 편안한 자세가 됩니다.

 

④ 설 때 몸 전체의 무게중심은 분산되지 않고 발의 앞 쪽 끝에 두어야 합니다. 발바닥을 쫙 펴서 바닥에 완전히 밀착시켜서 누가 밀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굳게 딛고 서되 그 중심을 발바닥 뒤나 중간에 두지 말고 앞 쪽 끝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허리가 뒤로 쏠리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습니다. 허리가 뒤로 젖혀지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긴장하게 됩니다. 또 너무 앞으로 숙이면 위축됩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방금 말씀드린 15∼30도 정도로 숙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⑤ 기지개를 켤 때나 모든 동작에서 손끝, 발끝까지 기운을 쭉 보내야 합니다. 손발끝은 힘없이 늘어뜨린 상태에서 동작을 하면 기운이 이 부위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므로 운동효과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손끝 발끝까지 쭉 펴고 기지개, 좌우로 움직이는 동작을 해 줘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로 단전을 지긋이 바라다보면 內觀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동작의 의미는 몸의 유연성을 높이고, 몸의 좌우를 골고루 발달시켜 신체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며 기운이 몸에 골고루 차 들어가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작의 자세가 잘못되면 오히려 호흡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단전의 위치와 호흡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전호흡은 정성스런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하고 곱고 매끄럽게 해야 합니다. 단전의 위치는 아랫배의 치골뼈 한마디 정도 윗 부분과 꼬리뼈 바로 위 휘어진 부분을 일직선으로 연결한 그 가운데입니다. 호흡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가 대자연의 품 속에서 쉬고 있다는 기분으로 모든 긴장을 다 풀고 해야 합니다. 이런 단전호흡을 계속하면 기운이 쌓이고 그것이 남아 넘치면 경락을 타고 돌게 됩니다.

 

넷째로 조식(調息), 조신(調身), 조심(調心)과 병의 생성, 소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단전호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식, 조신, 조심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숨을 차분히 고를 때 얼(精神)이 자리를 잡고 원기가 하단전에 차게 되는 것입니다. 호흡을 고르면서 서서히 동작을 해 주는데, 이때 마음을 호흡이 흩어지지 않게 하면 동적인 상태에서 정적인 정신통일 훈련이 될 뿐만 아니라 온 몸에 고루 원기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식에서 주의할 점은 숨소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리를 내면 무아지경의 깊은 정신집중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내관하여 자신의 호흡이 들고 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잡념이 들면 규칙적이고 균일한 호흡을 놓치게 됩니다. 내관을 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상태가 느껴집니다. 마음이 들뜬 위치, 크기, 강도가 느껴지지요. 마음이 가는 곳에 기운이 갑니다. 마음의 상태와 질병은 매우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마음이 배 위로 올라가 있는 경우 : 신경만 쓰면 위가 아픈 위장병의 원인이 됩니다.

 

② 마음이 오목가슴 위로 올라가 있는 경우 : 심장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간, 담이상하게 됩니다.

 

③ 마음이 가슴 위로 올라가 있는 경우 :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듯이 아프고 숨이 막힙니다. 이렇게 되면 폐와 심장을 상하게 됩니다.

 

④ 마음이 목까지 올라가 있는 경우 : 갑상선염에 걸리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고민이 많은 타입입니다.

 

⑤ 마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는 경우 : 혈압이 터지거나 고혈압으로 쓰러질 위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듯 마음자리와 건강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정신을 통일하고 호흡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조신은 신체를 전후 좌우 상하로 굴신하여 균형을 유지해 각 부위의 고른 발달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심인데 수련 중 이것이 가장 어렵고 또한 지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단전호흡은 단순한 호흡 조절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습니다. 조심이 이루어져야 더욱 깊은 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수련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처음 이야기한 그대로입니다.

 

4. 뱃 심 • 뒷 심 • 허 릿 심

 

뱃심, 뒷심, 허릿심(허리 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전의 자리를 치골과 꼬리뼈 바로 위를 일직선으로 연결한 그 가운데로 잡고 호흡하다 보면, 단전 밑바닥에 기운이 차고 이것이 아래 위로 흘러넘쳐 뱃심, 뒷심, 허릿심을 만듭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수련을 하여 일단 단전에 기운이 차면 우리말로 표현하는 세가지 힘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방금 말한 뱃심과 뒷심, 그리고 허리심입니다.

 

뱃심은 정신력 즉 추진력과 용력을 강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40세가 되면 현저히 줄어듭니다. 뱃심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용력, 추진력, 과감성, 일에 대한 모험과 도전성을 나타내는 정신력으로도 작용합니다.

 

그리고 뒷심은 책임감 즉 臨戰無退의 정신을 만들죠. 이 뒷심의 경우도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50세가 되면 현저히 줄어듭니다. 따라서 조그만 충격에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다리 힘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허릿심은 흉중에 품은 뜻, 꿈과 희망을 받쳐주는 의지를 만들어줍니다. 다시 말해 지구력과 책임감을 나타내며 천병만마에 대해 맞대응할 수 있는 자기확신과 정신력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허릿심은 대체로 60세가 되면 현저히 줄어듭니다. 허릿심이 빠지면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며 흉중에 있는 뜻과 기개가 줄어들거나 상실되는 것에서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리를 다치면 방사를 할 수가 없는데 이것은 사출이 허리로부터 뻗어가는 힘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던 많은 분들이 환갑을 지나면서 국민에게 실망을 주는 언행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허리에서 힘이 빠져나가 노추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전호흡을 제대로 하게 되면 단전에 기운에 가득차고 온 몸을 돌아다녀 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 심적인 강인함을 키울 수 있습니다.

 

5. 올바른 수련에서 나타나는 실증적 증거

 

-단침과 열기-


마지막으로, 어떠한 수양이든지 올바른 것이기만 하다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정리하겠습니다. 그 실증적인 증거로는 다음의 두가지가 있습니다.

① 정신통일이 된 상태에서 단전호흡, 명상, 혹은 기도를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침이 고입니다. 정신이 흩어져 잡념이 있으면 입이 마르고 바짝바짝 타게 됩니다. 시중에는 정신통일을 하기 위해 혀를 입 천정에 붙이고 호흡을 하라고도 하고, 눈을 반개해야 한다고 하는 등 호흡하는 자세에 대한 낭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혀가 입 천정에 붙는 것은 정신통일이 된 상태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지,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다른 한 곳에 가 있기 때문에 정신집중에 방해가 됩니다. 눈을 반개하라는 것도 초보자의 경우 정신을 외부에 빼앗기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호흡에 방해가 됩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호흡을 하게 되면 갈등이 현저히 감소되고 정신이 통일됩니다. 이렇게 정신통일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 단침이 고입니다. 이렇게 입에 단침이 고이게 되면 몸에 신경성 등의 여러 잔병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단침을 우리 몸 안에 있는 보약이라 합니다.

 

② 또 정신통일이 되어 호흡을 하게 되면 단전에 열기가 생깁니다. 때로는 그 열이 너무도 뜨거워서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몸이 약해지는 과정에서(특히 암 부위) 그 해당 손상 부위가 차가와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몸살 기운이 있다거나 배가 아프면 아랫목에 몸을 지집니다. 이것이 바로 열기가 몸에 좋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런 열기는 외부적인 것입니다. 자기 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이러한 단전의 열기는 모든 염증을 치료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저 자신의 경험으로는 언젠가 종기가 한 번 나서, 의식을 그쪽에 집중하고 보니까 그곳에서 냉기가 나더군요. 그래서 기운을 보내니 톡하고 터져버리더군요. 단전의 열기가 그 종기가 난 곳을 태워버린 것입니다. 이런 단전의 열기를 느끼면서 계속 수련하다 보면 엄청난 방금 이야기한 이상의 많은 정신적 신체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6.우리가 만들어야 할 21 세기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21세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없이 보다 대국적인 사고는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가 전제된 이후에 그 연장선상에서 미래에 전망과 대응 방안이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역사의 보편화 과정에 대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의 보편화 과정은 정신의 보편화 과정과 물질의 보편화 과정을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 보편화 과정은 세계적으로 교육을 받는 대상층의 확대와 교육기간의 연장등을 들어 설명할 수 있는데, 한가지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수천년 역사과정 중에 금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전인류가 보통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양적 확대를 이루어 왔으나 교육의 질적인 문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육의 보편화는 인류 문명 구조의 변화를 더욱 가속시키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물질의 보편화 과정은 의식주의 기본적인 해결과 생활수준 향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연원리를 이용한 기술의 향상에 크게 기인하고 더욱 발전할 것이지만 부의 지나친 편중과 이로 인한 기아의 문제를 아직도 남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변화의 양상과 문제는 무엇인가? 이는 한국의 발전이 기본적으로 모방에 의존해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합니다. 국가는 외국의 것을, 개인은 서둘러 남의 것을 조금 변형시켜 모방하면 성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는 그러한 모방만을 통한 발전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발전이 그 한계점에 이른 것입니다. 모방할 대상이 이제는 거의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지혜가, 개인에게는 창의력이, 사회적으로는 신뢰의 회복, 곧 信義가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가 이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도덕성 회복이라는 명제에 대해 이런 저런 구호만을 통해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도덕적인 사회, 신의와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를 이루는 것과 개인 자기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연관이 되어지는가에 대한 명확한 논리를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창의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명확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의력이라는 것, 지혜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생겨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그 방법을 터득하는 데에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에게는 지도자의 상이 시대가 달라지면서 현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분명한 상의 제시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지도자상은 시대상으로 보면 1차 농업사회에서 영웅적 인물, 다시 말해서 집단의 맨 앞에 서서 집단을 이끈 영웅적 인물의 상이었고, 2차 산업사회에서는 집단의 중심에 서서 구심점으로 작용하여 민의를 수렴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 태동의 기운이 보이는 정보화 시대의 지도자상은 무엇인가?

 

집단의 맨 뒤에서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아실현 곧 전문가적인 소양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원을 잘 보조해줄 수 있는 상, 그런 지도자상이 필요합니다.

 

이때의 지원과 보조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고 거기에 더해 집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과거의 사회 체제가 감시와 규제 타율적인 명령 체계에 기인해 왔다면 이제는 자율적인 협조체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역할과 책임이 주어지면 감시가 없어도 비교적 성실히 수행합니다. 이는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구성원이 개성화되고 전문성과 자격증을 지니게 된 것이며 그 성원의 성격과 질이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전의 사회, 곧 기업이나 국가가 분명한 피리미드 구조였다면 지금은 팀장 제도로 바뀌고 있는 추세인데 바로 이러한 것이 시대의 변화를 논증하는 예일 것이고 앞으로 점점 확산의 추세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의 질적인 변화의 차원에서 거기에 맞추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지혜는 어떻게 키우며 구성원 개인의 창의력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공동체 사회에서의 도덕성과 신의와 신뢰는 어떻게 보고 함양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당면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지혜와 창의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선택의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혜는 생각에 막힘이 없고 굴절이 없고 단절이 없고 헝클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사고)은 '얼'의 작용입니다. 이 '얼'의 뿌리는 하늘이요 '넋'의 뿌리는 땅입니다. '얼'을 한자로는 靈魂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결부됨으로써 살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죽는 것입니다. 혼비백산합니다.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져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영혼의 뿌리는 하늘이며 하늘에 대한 외경심이 없으면 다시 말해 자신의 신세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고 해서 하늘을 원망하면 혼줄이 끊어집니다. 그것은 영적인 고아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영적인 고아가 되면 영혼이 맑을 수가 없고 따라서 순수해질 수가 없고 올바른 사고의 조리가 없어지고 헝클어지게 됩니다. 적게는 부모를, 친구를, 동기간을 원망한다거나, 자기 스스로 어려움에 처하면 자기 탓을 하는게 아니라 다른 대상을 원망하며 또한 악한 마음이나 생각을 하거나 흑심을 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혜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天에 대한 외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고의 단절을 국선도 수련인의 입장에서 말을 할 때 호흡 일분대를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호흡이 40∼50초는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의 근기가 아니고서는 일분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이유는 자기의 원초적인 본능, 이기심, 생명에 대한 집착, 이런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벗어나려면 우리가 수련할 때 청산선사께서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늘을 본받으려는 大孝之心을 갖고 자기를 버리는 입장에 서야만 합니다. 그런 입장에 가지 않으면 절대 일분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우선 上氣가 되고 호흡에 압박이 와서 몸을 가누질 못합니다. 일분벽을 넘게 되면 사고의 갈등이 없어지고 사고의 조리가 생겨납니다. 또한 감정의 갈등도 없어집니다. 사고와 감정의 갈등이 없어지고 어떤일을 대할 때 그 일의 맥점이 보이게 됩니다. 더 집중해서 보면 여러 맥점들이 보이는데 그 맥점들의 순서가 배열해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창의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의 맥점이 보이면서 막힘이 없이 틔여 보이는 것이입니다. 결국 창의력은 지혜가 각각의 소질에 따라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호흡이 일분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호흡을 무리하게 늘리려 하거나 호흡의 길이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주의가 요구되므로 지도자에게 충분한 상의와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공동체 사회가 전체에 핵심으로 작용, 함양해야 할 도덕성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자연현상에서 생명의 3대 요소는 적당한 온도와 수분과 영양분을 듭니다. 자연의 생명현상을 인간에 비교해 보면 적당한 온도는 따뜻한 마음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타인 이전에 자신에 대해서 얼마만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위로한 적이 있는가. 못난 자신, 못생긴 자신, 회의, 갈등, 번뇌, 소외감, 열등감, 초조, 불안, 의심, 자조, 냉소, 자학 등 모든 것은 차가운 성질은 갖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응축시켜 스스로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주지 않으며, 부모에게나 형제, 친구, 연인 등 타인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받기 원하는 것은 생명력의 구걸행각이요, 인생의 거지행각인 것입니다. 그런 이에게는 평안함과 행복감이 오지 않습니다. 설령 오더라도 일시적입니다. 타인에게서 받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웅덩이나 연못은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물의 공급이 없으면 언젠가 메말라 버리는 반면, 옹달샘은 늘 스스로 가득 채우고 오히려 넘쳐서 주위를 적셔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하고 넘쳐서 타인에게까지 끼치는 것을 '德'이라 합니다. 자신에 대해 따뜻하게 감싸지 않고 위로해 주지 않는 자가 어찌 타인에게까지 따뜻함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 현상의 수분은 인간에 있어서 여유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너무 조급하고 성급하며 때로는 감정적입니다. 차분함도 없이 쫓기는 듯합니다. 언어구사도 극단적이고 딱부러지게 합니다. 또한 곧잘 우쭐대고 남은 쉽게 무시합니다. 이는 스스로 마음을 건조케 하여 메마르게 하는 현상을 초래합니다. 마치 알곡이 수분이 부족하여 쭉정이가 되어버리는 현상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 현상의 영양분은 인간에 있어서 보람입니다. 사람이 일에 성실하고 스스로 가치있는 일을 했을 때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개인에게나 사회에 밑거름이 되며 영양분을 축적하는 것과 같고 삶에 윤기가 있게 합니다. 보람이 없는 행복감은 진정한 행복이 아닌 모래성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도덕성의 회복없이는 기존의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질서가 서지 않고 사회에 살맛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지 않으며, 국민의 융화력과 친화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국민의 융화력과 친화력이 없이는 국민의 응집력에 한계가 있고 따라서 국력의 신장에도 한계가 있게 됩니다. 도덕성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것은 사회전체의 기운이 따뜻함을 간직하고 온화한 모습을 보이며 여유롭고 보람을 가져 재생산의 거름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 작용은 국선도 수련을 통해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선도가 한국사회에 새로운 수양의 풍토를 조성하고 도덕성 회복에 구체적으로 기여해야 할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Source: 국선도 광화문 수련원 홈페이지 (www.sundoworld.co.kr)